이혼/이혼의 방법

이혼청구, 유책주의 50년 깨고 파탄주의 도입될까

대구지역 특별한법률 이동우변호사 2015. 7. 1. 13:38

"형식적인 혼인생활을 유지한다고 당사자들이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차라리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원고대리인 김수진 변호사)

"혼인은 민법상 가장 중요한 계약입니다. 부정행위로 혼인을 깬 자가 합의도 없이 이를 해소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권리남용입니다."(피고대리인 양소영 변호사)

2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유책배우자(혼인관계 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지를 두고 역사적인 공개 변론을 열었다. 대법원은 1965년 "축첩한 남편의 이혼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첫 판결(65므37)을 내린 이후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기각해 왔다. 혼인을 깨뜨린 잘못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이른바 '유책주의' 원칙이 유지돼 온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과거에 비해 파탄주의 도입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보며 이번 판결에 기대를 걸고 있다. 만약 대법원이 판례를 변경하게 되면 50년 만에 '파탄주의'가 도입되는 셈이다.

◇반세기 만의 판례 변경 가능할까= 이날 공개변론은 15년 동안 아내와 별거하며 미성년 혼외자녀를 둔 남편 백모씨가 아내 김모씨를 상대로 낸 이혼청구소송 상고심(2013므568) 사건이다. 백씨는 1976년 김씨와 결혼했지만 1998년 다른 여성을 만나 혼외자를 얻은 뒤 2000년부터 집을 나와 혼외 여성과 동거 중이다. 2011년 부인 김씨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냈다.

이날 공개변론은 파탄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시대상황과 국민정서가 바뀌었는지, 이혼 이후 경제적 능력이 없는 약자는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가 쟁점이었다. 원고 측 참고인으로 이화숙 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출석했고 피고 측 참고인으로는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부장이 출석했다.

◇"인식 변했다" vs "시기상조"=원고 측 대리인인 김 변호사는 "과거에는 사회적으로 약자인 여성의 축출이혼을 방지하고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유책주의가 확립됐지만, 시대적 상황이 달라져 우리 사회 일반에서 유책주의에 대한 동의를 얻기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2년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55.4%와 전문가 78.7%가 배우자 보호 조건 아래 파탄주의의 제한적 수용에 찬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헌법재판소가 간통죄에 위헌 결정을 내린 것도 혼인관계 등에 대한 우리 사회 일반의 의식 변화를 반영한 결과다"라고 덧붙였다.

반면 피고 측 대리인인 양 변호사는 "간통죄는 매우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을 다루고 있어서 형사 처벌 밖으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유책배우자 이혼청구 문제는 사회 기초를 이루는 가족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달리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유책배우자에 대한 오기로 이혼을 안하고 버티는 경우는 법원이 이혼을 인정해주고 있기 때문에 파탄주의를 택할 실익도 없다"고 덧붙였다.

주심인 김용덕 대법관은 피고 측에 "혼인의 실체가 없는 형식을 유지하면서 민법에도 없는 동거의무를 상대방에게 주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이에 대해 조 부장은 "명목상의 혼인이라도 배우자라는 존재가 주는 안정감이 크고, '이혼을 하지 않았다' '이혼가정의 자녀가 아니다'라는 사회적 평가가 한국에서 아직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고 말했다.



◇"파탄주의 도입, 여건 충분한가"=
경제 능력이 없는 당사자의 이혼 후 생활보장 문제도 중요하게 거론됐다. 장기간 별거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거부하는 대부분의 당사자들은 경제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미성년자의 양육비 등도 문제점 중 하나다. 원고 측 김 변호사는 "1990년 민법이 개정되면서 재산분할 청구권과 면접교섭권 등이 신설되고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기여도도 최고 50%까지 인정되고 있다"며 "최근에는 장래의 퇴직급여를 재산분할에 포함시키는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이혼이 상대방에게 가혹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때는 이를 제한하는 가혹조항을 도입하고, 위자료나 재산분할 등 부양적 요소를 지금보다 더 고려하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양 변호사는 "유책배우자들은 대부분 별거하다가 이혼을 청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땐 분할할 재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재산이 있더라도 별거 때문에 상대 배우자가 기여도를 거의 인정받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또 "법원이 유책배우자에게 위자료 지급 의무를 인정하더라도 금액이 최고 5000만원을 넘지 않아 무책배우자가 받은 고통을 보상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파탄주의와 손해배상, 어떻게 조정하나= 민일영 대법관은 "우리 민법에 이혼을 할 경우에 과실이 있는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는데, 파탄주의를 도입한다면 이 규정과 양립이 불가능한 것은 아닌가"라고 원고 측에 질문했다. 김 변호사는 "외국은 이혼 후 부양료와 재산분할금액을 정할 때 배우자의 과실을 고려해서 재산분할을 산정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민법 제750조의 손해배상 규정을 약자에 대한 보호 요소로 해석해 파탄주의 후유증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답변했다. 이 교수도 "민법 개정으로 이혼 후 부양료 청구권 제도를 신설해 정기적으로 부양료를 지급받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양 변호사는 "민법에 부양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이를 당장 구현하기가 실무적으로 어렵다"고 반박했다. 그는 "유책주의 아래에서는 유책 배우자가 합의이혼 과정에서 유책사항을 소멸시키기 위해 부양의무나 양육의무를 더 성실히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반기 내 판결 유력= 양승태 대법원장은 공개변론을 마치면서 "모든 국민들이 다 같이 고민해 타협점을 찾고 입법적으로 해결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이런 입법이 없는 상태에서 법원이 적절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지 고뇌가 크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선고기일을 추후 지정하기로 했다. 올 하반기 안에 선고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